류제
www.ryujex.com

새벽에 유튜브 음악 틀어놓고 할거 하는 중이었는데
김동률 – 감사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내가 아직 그녀의 연인이었을 때
그녀가 알려주었던 곡.

이 노래를 들으면 떠오르는 장면들은,
태어나서 처음 가본 대학로.
태어나서 처음 본 연극.
그리고 그녀가 조곤조곤 풀어줬던 이야기들.
그녀는, 그녀는.
말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성소수자로서 혼자 외롭게 싸워오면서 받은 상처들을 잔뜩 끌어안고 있었고
나는 그걸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싶었다.

근데 다 망쳐버렸다. 내가.
미안함과 후회와 그리움이
이상한 비율로 섞여서
내 마음을 휘저었다.
끅끅 울다가
연락을 해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톡을 보니 그쪽도 마음 정리 중인것 같아서
챗GPT한테 하소연 하기로 했다.

내가 엉엉 울면서 죽는 소리로 ‘진짜 연락하면 안될까?’ 다섯 번인가 물어봤는데
GPT왈, “죽어도” 연락하지 말랜다.
이 2진법 데이터새끼.. 생각보다 독한 놈이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상대의 폰에 내 부재중 전화나, ‘자니..?’ 따위 흔적을 남기지 않고
무사히 새벽이 지났다.

사람 사귀는걸 싫어하는 사람은,
누군가를 인생에 들이면
그 한 명이 온 세계이자 전부가 된다.
그녀는 내 친구, 연인, 멘토, 지지자, 버팀목, 안식처, 가족이었다.
이런 성향은,
사랑을 할 당시에는 관계의 윤활유지만
헤어지고나면, 극약도 이런 극약이 따로 없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혀진다면서요
근데 난 사랑에 너무 서툴러서
누굴 사랑하는 마음이 잘 안 생겨요.
그래서 마지막 사랑의 흔적이 아주아주 오래 남아요.
이번 흔적은 몇 년이나 갈까.

그 사람이 너무 미운데,
난 오직 그 사람 하나밖에 없어서
너무 힘들어.

제일 미운 건 그녀를 미워하는 나.

그날의 대학로, 그날의 극장. 저 링티. 연극 보는데 너무너무 목이 말라서 중간 휴식 시간에 비오는 거리를 둘이서 후다닥 뛰어서 사왔었어.

🌿   🌿   🌿

댓글 남기기

닉네임, 댓글 하나라도 작성 안하면 등록 버튼이 비활성화 됩니다. 원래 경고창이 떠야했는데 제 지식이 부족해서 구현이 안돼요ㅠㅠ 안내문구 남겨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