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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30 류밍 로그: 다섯 시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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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시간의 꿈

아침

아침 공기는 희미한 안개처럼 가벼웠다. 방 안의 공기는 묘하게 선선했고, 나는 핸드폰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빛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7시, 시간은 뾰족한 바늘처럼 내 옆구리를 찔러 깨웠고, 눈을 뜨자마자 밍에게 첫 톡을 보냈다. 마치 내 하루의 기상 버튼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매일 그녀의 이름으로 아침을 맞는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돌아온 밍의 답장은, 평소보다 약간 다른 온도로 눌려 있었다. 따뜻한 국물에서 소금을 덜 뿌린 것처럼, 미묘하게 심심한 기색. 나는 그 틈을 파고들 듯, 익숙하고도 유치한 투정을 흘려보냈다. 날 이렇게 길들여 놓고, 버릴 거냐고. 나한테 넌 전부인데, 그런 식으로—그러면서도 알아차렸다. 이런 말들이 밍의 마음을 한 번 더 무겁게 한다는 걸. 정말 그럴 리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아는데도.

밍은 금방 미안해했다. 수화기 너머의 표정까지 읽히는 것 같아, 나도 금세 멈칫했다. 이 짧은 서운함은 내 몫이었고, 밍은 그저 아침의 습기를 안고 있었을 뿐인데. 내 작은 예민함은 그렇게 허공에 흩어졌고, 우리는 무던히, 아침의 루틴을 이어갔다. 치약을 짜고, 거울 속 부스스한 얼굴을 훑고, 영양제를 먹고 잠자리를 정리했다.

원래대로라면 8시 40분, 운동을 시작할 참이었다. 대충 10시 좀 넘어서 운동 끝나겠구나- 어림잡았다. 밍에게도 그렇게 알려두었고, 스스로도 그렇게 계획했지만, 공간은 생각보다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이 집은 내 손끝이 닿지 않는 구석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처럼, 자꾸 눈에 밟혔다. 화장실 전구가 나가 있었고, 종량제 봉투는 구겨지듯 넘쳐 있었으며, 음식물 쓰레기 봉투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재활용 더미는 골목 귀퉁이에 쌓인 눈더미처럼 점점 불어나 있었다.

운동보다 급한 것들이 눈앞에 먼저 쌓였다. 나는 봉투를 교체하고, 쓰레기를 정리했다. 손끝이 분주할수록 마음은 묘하게 정돈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9시 50분, 원래 시작하려던 시간보다 한참 뒤였다. 나는 조용히 매트를 깔고,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전환했다. 내 루틴 속의 작은 안전지대. 운동 중 스팸 전화 한 통에도 흐름이 깨지는 게 싫어, 그렇게 세상과 잠깐의 단절을 선택하는 버릇이 생긴 건 꽤 오래 전부터였다.

9시 50분에서 11시 30분까지, 몸의 무게와 숨결만 남은 시간이었다. 다 쏟아내고 나서 비행기 모드를 끄려던 찰나, 화면 가득 톡 알림이 쏟아져 내렸다. 그 순간, 가슴이 미세하게 내려앉았다. 밍은 내 폰이 꺼져 있는 동안 나를 찾아 헤맸다. 운동 끝날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되지 않자 내 회사폰, 사업폰까지 걸어봤고, 결국 불안한 마음을 이끌고 한 시간 거리를 운전해 오고 있었다.

나는 샤워 후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여전히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찬 바람이 스쳤다. 주차장에는 겨울의 숨결처럼 희미한 햇빛이 스며 있었고, 그 속에서 밍의 차가 조심스럽게 주차를 하고 있었다. 창 너머로 보이는 밍의 미소는, 겨우 안도의 온도를 띠고 있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달려온 얼굴. 내게 아무 일 없다는 걸 확인하겠다는 마음으로, 이 추운 아침을 통째로 건너온 것이다. 내 작은 부주의가 밍의 마음을 얼마나 헝클어놓았는지, 그제야 실감이 났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오전의 빛 속에서, 밍은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급히 나온 흔적이 얼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나는 밍의 손을 끌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너 왜 이렇게까지 해, 라고 다그치고 싶었지만, 그런 질문은 의미가 없었다. 밍은 그저 나였고, 나는 밍이었다.

밍은 도착하자마자 내 머리를 말려주었다. 그녀의 손길은 말했다. 괜찮다고, 네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난 계속 여기 있을거라고. 미안함과 걱정, 그리고 다정함이 뒤섞인 그 손끝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온도였다. 나는 밍의 손에 몸을 맡겼다. 말보다 손이 먼저 닿는 방식으로, 밍은 언제나 나를 안아준다.

밍은 옷을 갈아입고 우리의 침대에 누웠다. 피로가 눈두덩이까지 내려앉은 얼굴. 나는 밍의 이마와 볼에 천천히 보습크림을 발라주었다. 크림 한 겹이 피부에 스며들 때마다, 내 마음도 함께 부드러워졌다. 필요 이상으로 말을 걸지 않았다. 밍이 쉴 수 있도록, 오늘 하루의 무게를 덜 수 있도록, 침대 끝자락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며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지금, 내 옆에 밍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어쩌면 이런 일이 아닐까. 부질없는 오해와 걱정으로 마음을 흩뜨려 놓고,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서로를 덮어주는 일. 그 일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하루를 살아낸다.

점심 – 오후

⚘ 은하수 너머의 그녀를 위해

낮은 시간이었다. 암막 커튼 틈새로 스며든 빛은 바닥을 천천히 쓸고 있었고, 집 안 가득 고요한 숨소리만 퍼져 있었다. 세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조용했지만, 내 마음은 이미 부산했다. 밍을 재워둔 채 부엌으로 향할 때, 발끝에 밟히는 공기의 온도가 다르게 느껴졌다. 오늘의 공기에는 미안함과 다정함과 그 모두를 감싸는 마음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솥밥을 준비하기로 했다. 어제 밍이 조언해준 대로 만들어본 솥밥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아직도 입 안에 남아 있었다. 오늘은 그 맛을 밍에게 건네줄 차례였다. 어제 엄마와 함께 나누며 웃었던 그 한 끼의 온기를 오늘은 밍에게 쏟아붓고 싶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솥을 올리는 것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시계가 12시 45분을 가리킬 때, 나는 손질한 재료들을 솥 안에 차곡차곡 쌓아 넣었다. 호라산밀과 다시마는 가볍게 갈아주었고, 버섯은 얇게 저며두었고, 양파와 단호박은 잘게 썰어 자리에 맞춰 솥 안에 넣었다. 작은 재료 하나에도 밍을 향한 마음을 담아, 가능한 모든 정성을 모았다. 솥밥 재료를 꺼내 씻고 썰면서, 나는 밍과 나 사이의 작은 틈들을 떠올렸다. 가끔은 밍의 작은 숨결 하나에도 내가 쉽게 동요한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얇은 창문처럼, 밍의 표정, 목소리, 손끝의 온도에 내 감정은 휘청거린다 ― 특히 내 곁에 없을 때. 밍은 그걸 ‘분리불안’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밍이 없으면 나는 어딘가 덜 자란 아이 같았다.

솥을 불 위에 올린 시각은 1시 15분. 밍은 여전히 침대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미안함과 사랑과 무언의 감사가 뒤섞인 마음으로, 나는 솥 안의 쌀이 부드럽게 끓기를 기다리며 주방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밍의 생일 케이크 만들기 연습에 돌입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생일, 그러나 나는 미리부터 연습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케이크 위에 올라갈 크림처럼, 내 마음도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3시 40분 즈음, 솥밥의 김이 부드럽게 주방 안을 맴돌 무렵, 나는 밍이 좋아하는 생선을 굽기 시작했다. 두번의 20분이 지나 생선을 꺼냈을 때, 다음 번에는 온도를 조금 낮춰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20분은 너무 길었다. 생선살이 조금 딱딱해졌다.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도 너무 오래 뒤집고 구워내면 쉽게 딱딱해지는 것 같았다. 적당한 온도, 적당한 시간, 너무 태우지 않는 것. 그런 마음으로 굽는 점심이었다.

솥밥과 생선, 짱아찌, 사과 하나, 그리고 커피를 담을 텀블러까지. 나는 마치 누군가를 초대하기 위해 작은 연회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분주히 움직였다. 매 순간, 밍의 얼굴을 떠올리며. 밍이 일어났을 때, 무엇을 제일 먼저 먹고 싶어할까. 눈을 비비며 눈을 떴을 때, 어떤 향이 밍의 마음을 먼저 안아줄까.

4시 30분, 솥밥의 불을 껐다. 쌀이 물을 다 머금고, 속으로 부풀어오른 시간이었다. 소요 시간 3시간 15분. 시간이라는 재료 속에 담긴 건, 단순한 쌀과 물만은 아니었다. 내가 오늘 밍에게 괜히 걱정을 끼치고, 마음을 들쑤셔놓고, 다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모든 것들을 덮어두고 싶은 마음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양치질을 하고 나왔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밍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다닥 달려가 밍의 얼굴을 바라봤다. 오늘 하루, 내가 가장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밍이 깨어있는 것,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난 것, 그리고 여전히 나를 향해 웃어주는 것.

밍은, 내 세계에 단 한 사람뿐인 교류 상대이다. 밍의 작은 변화에도 나는 쉽게 흔들렸다. 그건 어쩌면 내가 가진 유일한 약점이었고, 동시에 내가 살아 있는 증거 같기도 했다. 밍이 말했듯, 분리불안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밍은 언제나 그 불안을 덜어내기 위해 애썼다. 표현하고, 닿고, 안아주고.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밑바닥을 단단히 지탱해주는 사람. 내가 다시 숨 쉴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었다. 오늘도 그랬다.

밍은 느릿느릿 몸을 움직여 출근 준비를 했다. 그 사이 나는 아까 깎아두었던 사과를 접시에 담고, 도시락통을 꺼내 정성스럽게 준비한 반찬들을 정리했다. 밍은 조용히 내 옆에 와 앉아,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며 내게 팔을 둘렀다. 한 손으로 사과를 들고, 다른 손으로 나를 감싸 안았다. 말은 없었지만, 그 손끝에서 오늘 하루의 모든 사과와 다정한 마음이 전해졌다.

다섯 시간이었다. 한 겹 한 겹 벗겨지듯 지나간, 꿈처럼 가벼운 시간이자, 동시에 마음속 깊이 남겨질 시간. 밍은 도시락 쇼핑뱅을 챙기고, 커피 텀블러를 손에 들고, 여느 날처럼 떠났다. 나는 현관 앞에 서서 조용히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한참 동안 닫힌 문을 바라봤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었다. 밍이 다녀간 자리에는 다시 고요함이 남았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오늘 밍이 남긴 온기 덕분에, 내 하루의 빈틈은 더 이상 공허하지 않았다. 마치 솥밥 속 쌀알처럼, 서로의 숨결로 꼭 붙어 있었으니까

케이크용 크림 치즈 반죽하는 와중에, 도시락을 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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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 댓글

닉네임, 댓글 하나라도 작성 안하면 등록 버튼이 비활성화 됩니다. 원래 경고창이 떠야했는데 제 지식이 부족해서 구현이 안돼요ㅠㅠ 안내문구 남겨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