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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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저자 | 박준 |
출판 | 난다 |
장르 | 산문 |
읽은 기간 | 2025년 2월 16일 (1일) |
별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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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주의 : 이 아래로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아직 책을 읽지 않으셨다면 아래는 나중에 확인하세요!
햇빛이 창을 가득 채운다. 겨울인데도 유난히 선명한 빛이었다. 어쩐지 조금 낯설었다. 겨울은 회색이나 새하얀 색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너무나도 맑고, 너무나도 밝았다. 거리에 내려앉은 빛이 모든 걸 평평하게 만들어 버리는 기분이었다. 이런 날이면 감정도 어디론가 증발해버릴 것 같았지만, 나는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친구가 선물해 준 것이었다. 그녀가 고른 책들은 언제나 그녀를 닮았다. 맑지만 묵직하고, 쉽게 무너지지 않지만 어떤 감정 앞에서는 조용히 머물 줄 아는 사람.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이 책 역시 그녀와 닮아 있음을 알았다.
이 책은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한때 사랑했지만 결국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들, 함께한 시간이 쌓였지만 끝내 닿지 못한 감정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깊고 묵묵한 공기. 그는 한 문장 안에 기억을 담고, 한 페이지 안에 이별을 새긴다. 떠난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그 사람이 남긴 말과 손길, 표정은 우리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조용히 알려준다.
그는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감정을 스며들게 한다. 그의 글은 단정하지만 서늘하지 않고, 담담하지만 메마르지 않다. 마치 오래된 서랍을 열었을 때 떠오르는 냄새처럼, 무언가를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잊지 못했던 기억들을 불러일으킨다. 그 기억 속에는 따뜻함과 아픔,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닿을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기며 내 기억 속 누군가를 떠올렸다. 영원할 줄 알았던 연결고리,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대화,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고 믿었던 얼굴. 하지만 인연이라는 것은 언제나 예고 없이 흐려진다. 우리가 함께 보냈던 시간은 변하지 않지만, 우리는 변한다. 그래서 더 아쉽고, 그래서 더 소중하다.
책장을 덮으며 다시 창밖을 보았다. 여전히 햇빛은 환했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이 책을 내게 준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떠나보내지 못한 감정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건넸을지도.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다정한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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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들
책을 펼치는 순간, 눈앞의 세계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주 가벼운 진동이었다. 바닥에 놓인 컵이 아주 살짝 출렁이는 정도의, 내가 아니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흔들림. 문장을 따라가며 그 진동을 쫓았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기억이 깨어나고, 깊숙이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조용히 떠올랐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그렇게 나를 흔들었다.
᯽ 담담한 슬픔, 그러나 무겁지 않은
책 속에는 ‘이별’이 자주 등장한다. 떠나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 함께했던 순간과 끝내 다가오지 않은 순간. 이 책은 그 모든 것들을 특별한 사건처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처럼 풀어낸다. 이별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더 깊숙이 스며든다고.
그렇다고 해서 그 슬픔이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단순한 단어들로도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 사람이 떠나간 자리에 남은 것들’에 대한 묘사가 특히 그랬다 ㅡ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대화 같은 것. 이별이란 결국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남겨진 것들 속에서 그 사람을 계속 마주해야 한다는 감각에서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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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을 받아들이는 법에 대한 조용한 가르침
이 책을 읽으면서 한동안 떠올리지 않았던 얼굴들이 생각났다. 멀어졌거나,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어떤 사람은 인사를 나누지 못한 채 사라졌고, 어떤 사람은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또 어떤 사람은 이유 없이 멀어졌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게 더 깊은 이별처럼 느껴졌다.
기억이라는 것은 이상한 감각이다. 사라진 것 같다가도, 특정한 문장이나 한 장면에 의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이 책은 그런 기억을 조용히 불러낸다. 아주 가벼운 터치로, 하지만 확실하게. 기억을 부정하거나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우리 안에 남아 있으며,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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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의 방식
남아있는 책장이 줄어감에 따라 더 아쉬웠던 이유는, 직접적인 위로를 건네지 않으면서도 깊이 위로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흔히 위로란 “괜찮을 거야”라는 말로 표현되지만, 사실 그 말이 진심으로 다가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박준은 말 대신 ‘함께 있음’을 선택한다. 너만 이런 감정을 겪는 것이 아니라고, 나도 알고 있다고. 그러니 조금은 덜 외롭다고. 어떤 문장은 조용히 등을 토닥이는 것 같았고, 어떤 장면은 그냥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 같았다. 그것은 말보다 더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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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는 글귀 (스포주의)
⚠️ 주의 : 이 아래로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아직 책을 읽지 않으셨다면 아래는 나중에 확인하세요!
두 얼굴
일출과 일몰의 두 장면은 보면 볼수록 닮은 구석이 많았다. …(중략)… 혹은 첫인사의 안녕과 끝인사의 안녕이 그러한 것처럼.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 나는 타인에게 별 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마지막 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 검은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유서처럼 그 수많은 유언들을 가득 담고 있을 당신의 마음을 생각하는 밤이다.
편지
- 어떠한 양식의 삶이 옳은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 편지는 분노나 미움보다는 애정과 배려에 더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몸과 병
-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보다는 사소한 마음의 결이 어긋난 데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것을 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넘기고 만다.
고독과 외로움
- 이렇게 외연(外緣)을 넓히며 사는 삶을 그리 길게 이어나가지 못한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쉽게 지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많이 먹으면 탈이 나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며 맺는 관계에도 어떤 정량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 정량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적어도 나는 한번에 많은 인연을 지닐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중략)… 고독은 내가 나를 만나야 겨우 사라지는 것이겠지. 그러다 다시 금세 고독해지기도 하면서.
낮술
- 사는 게 낯설지? 또 힘들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야.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삶이 나를 가만 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못살게 굴거나 심하게 다그치는 일은 잘 하지 않게 돼.
기억의 들판
- 먼 시간과 먼 공간을 오래 생각하다보면 먹먹한 기분이 드는데 나는 이 순간이 꼭 고요하고 넓은 들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 하늘의 색과 바다의 색이 서로 같다는 태평양의 작은 섬. 비행기가 그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니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는 기억의 들판에서 오래도록 놀았다 .
소설가 김선생님
- 그 직원(경리팀 직원-생선알러지 있음)이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선생님은 한 번을 거르지 않고 그분의 의사를 확인하고 나서야 생선구이가 담긴 접시를 자신 앞으로 가져다두었다.
- 더없이 사소한 일이고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상대가 누구든 간에 정중함과 예의를 잃지 않는 선생님의 태도를 좋아했다.
⸙ 이런 태도를 배우고 싶어서 독서노트에 적어놓는다.
사랑의 시대
- 반대로 상대가 가진 특유의 말투나 부르는 노래, 음식물을 씹는 소리가 귀에 거슬릴 때 나는 이 사랑이 곧 끝을 맞이할 것이라 직감한다
- 사랑에 대해 내리는 정의들은 너무나 다양하며 그래서 모두 틀리기도 모두 맞기도 하다.
⸙ 나는 내가 원할 때 사랑을 끝내 본 적이 없어서 어떨 때 끝을 맞이할 거라 예상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독서 노트에 적어 놓는다.
일상의 공간, 여행의 시간
- 일상의 공간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주고 여행의 시간은 그간 우리가 지나온 익숙함들을 가장 눈부신 것으로 되돌려놓는다.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
우산과 비
- 나는 가장 좋은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가장 아쉬울 장면만을 떠올리기로 했다. 한참을 그러다보니 그것이 꼭 아쉬운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빗길을 걸으며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도 잘 접어두었다. 어차피 우산으로 막을 수 있는 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는 더 쏟아지는데 자꾸 웃음이 났다.
절
- 배가 고플 때 먹고, 고단할 때 몸을 뉘이고, 졸음이 오면 애써 쫓아내지 않고 잠이 드는 것. 어쩌면 이것이 인간으로서 성취할 수 있는 해탈과 가장 가까이 자리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그렇게 참지 않는다면 조금 덜 욕망할 수 있을테니까.
어른이 된다는 것
-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런 삶의 궤적을 따라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꼭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상까지는 못 되지만 사유하며 살아가고 혁명은 어렵지만 무엇인가를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할 것이다.
- 그런데 나이를 한참 먹다가 생각한 것인데, 원래 삶은 마음처럼 되는 것이 아니겠떠라고요. 다만 점점 내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나이 먹는 일 생각보다 괜찮아요.
→ 무엇을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간에 어느 한 시절 후회 없이 살아냈던 사람의 말.
고아
-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손을 흔들며
- 아프다고 해서 안 해도 되는 일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아- 하며 웃었다. 나는 아버지의 그 웃음에 서운하고 야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축! 박주헌 첫돌
- 문득 생각해보니 돈을 주고 수건을 산 기억이 없다. …(중략)… 나는 매일 고운 연緣들의 품에 씻은 얼굴을 묻었던 것이다.
죽음과 유서
- 그 유서들의 내용 또한 핏발 서린 분노와 원망보다는 고마움과 미안함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다. 어쩌면 유서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타인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넘어 자신이 스스로의 죽음을 위로하고 애도하는 것이므로.
해
- 새로운 시대란 오래된 달력을 넘길 때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을 보는 혹은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서로의 눈동자에서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건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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