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 | 내용 |
---|---|
제목 | 숨결이 바람 될 때 |
저자 | 폴 칼라니티 |
출판 | 흐름출판 |
장르 | 논픽션, 에세이 |
읽은 기간 | 2025-02-02 (1일) |
별점 | ⭐⭐⭐⭐ |
※ 목차를 클릭하면 해당 항목으로 이동합니다.
📝 줄거리
저자 폴 칼라니티는 스탠퍼드에서 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한 후, 인간의 마음과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의학을 선택한다. 그는 예일 의대를 거쳐 스탠퍼드에서 신경외과 의사가 되어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들을 돌보며, 생명을 다루는 일에 헌신한다. 하지만 30대 중반, 유망한 의사라는 인생의 정점에서 그는 폐암 4기 판정을 받는다.
갑자기 환자가 된 그는 삶의 방향을 다시 고민하게 된다. 그는 치료를 받으며 다시 수술실로 복귀하려 하지만, 점점 쇠약해지면서 결국 의사로서의 역할을 내려놓아야 한다. 삶의 의미를 찾고 남은 시간을 충실히 살기 위해 그는 아내 루시와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고, 딸 케이디가 태어난다. 아버지가 될 기쁨과 동시에 점점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하며, 그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경험과 철학적 성찰을 기록한다.
그는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도 인간으로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며,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2015년 3월, 그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한다.
.
🧡 읽으면서 느꼈던 생각과 감정들
하늘이 맑았다. 나의 집은 아늑했고 따뜻한 차가 나의 속을 데워주었다. 하지만 내 손끝은 굳어 있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손가락이 조금씩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문장을 따라가다 멈춰 서면, 낯선 공간에 홀로 남겨진 것 같았다.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고, 동시에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것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랐다.
폴 칼라니티는 의사였고, 환자였고, 결국엔 죽어간 사람이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다가, 자기 생명을 살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절망했을 것이다. 두려움에 몸을 움츠리고, 다가오는 마지막을 외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쓰기로 했다. 죽음이 닥친 순간에도, 삶을 기록하기로 했다. 나는 그것이 가장 용감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신경외과 의사였다. 뇌와 신경을 연구하는 사람. 사람들의 기억이 저장되는 곳을 다루고, 그들의 의식을 지키는 일을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손끝으로 만지는 직업. 그는 어쩌면 이미 오래전부터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자신의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달랐다. 그는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대신 마주 보았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그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했지만,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이야기했다. 의사로서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환자로서 그가 선택한 것은 삶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모래시계처럼 빠르게 흘러갔지만, 그는 그 시간을 손으로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아이를 갖기로 했다. 죽음이 가까워오는 순간,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기로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한참을 멈춰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그는 점점 더 약해지고, 결국은 떠났다. 하지만 아이는 남았다. 그의 일부가 세상에 남아, 숨을 쉬고, 자라고 있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걸, 그는 자신의 아이를 통해 증명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여러 감정을 느꼈다. 처음엔 슬펐다. 젊고 유망한 의사가, 이제 막 삶을 시작한 사람이, 불공평하게 병에 걸려 죽어간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하지만 점점 슬픔이 아니라 경이로움이 차올랐다. 그는 두려움 대신 사랑을 선택했다. 남은 시간 동안, 아내를 더 사랑하고, 글을 쓰고, 가족과 함께했다. 죽음 앞에서도 삶을 사랑하는 모습이, 오히려 삶을 두려워하는 우리보다 더 강해 보였다.
폴은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의 이야기는 남았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책을 덮고 나면 끝이 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이 남아 있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그가 의사로서 남긴 정신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소화 시켜야 할까?
책을 다 읽고, 나는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들어왔다. 시원함과 차가움 사이의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그 순간, 그의 말이 떠올랐다. “독자들은 잠깐 내 입장이 되어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거야. ‘그런 처지가 되면 이런 기분이구나… 조만간 나도 저런 입장이 되겠지.’ 내 목표는 바로 그 정도라고 생각해. 죽음을 선정적으로 그리려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을 때 인생을 즐기라고 훈계하려는 것도 아니야. 그저 우리가 걸어가는 이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지.” 그리고, 나도 가만히 숨을 들이마셨다. 숨결이 바람이 되는 순간을, 내 삶의 끝까지 기억하고 싶었다.
📜 기억에 남는 글귀 (스포주의)
⚠️ 주의 : 이 아래로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아직 책을 읽지 않으셨다면 아래는 나중에 확인하세요!
p. 41
최고가 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란다. 최고인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보다 1점만 더 받으면 돼.
p. 51
자, 이 책 좀 읽어봐. 넌 항상 고상한 헛소리만 읽더라. 이제 저속한 책도 한번 읽어볼 때가 됐어.
⸙ 이 작은 건넴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근데 워딩이 너무 웃겨서.ㅋㅋㅋㅋ
p. 65
육체의 쇠락과 죽음 앞에서도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p. 66
삶과 죽음의 문제에 관하여 도덕적인 견해를 세우려면 그 문제와 관련된 직접적인 경험을 더 많이 쌓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무게감을 잃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중략… 이제 직접적인 경험이 필요했다. 진지한 생물학적 철학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학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도덕적인 명상은 도덕적인 행동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p. 70
그래도 시신에게서 인간성이 갑자기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맡은 시체의 위를 절개하여 열었다가 채 소화되지 않은 모르핀 알약 두 정을 발견한 적이 있다. 생전에 그는 홀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며 약병의 뚜껑을 더듬어 이 약을 꺼냈을 것이다.
p. 71
해부실 환경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 즉 의사들은 사체 기증을 거의 하지 않는다.
p. 89
"저, 어젯밤에 그 쌍둥이는 어떻게 됐나요?" 내가 물었다.
그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소식을 전해주었다. 한 아이는 어제 오후에 죽었고, 다른 아이는 24시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내가 새로운 아이를 받을 무렵에 죽었다는 것이다. — 쌍둥이의 삶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 전날 밤 위험한 상황에 있던 쌍둥이 제왕절개. 다음날엔 건강한 산모의 아이를 받았다.
p. 96
뇌는 우리가 겪는 세상의 경험을 중재하기 때문에, 신경성 질환에 걸린 환자와 그 가족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p. 98
선배 레지던트는 내게 이것저것 알려주는 대신 마흔 세 명의 환자 명단을 건네주었다. “내가 해주고 싶은 이것 뿐이에요. 병원 생활이 큰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요.”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이 서류들이 그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위험과 승리로 가득한 이야기들의 조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p. 105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찮은 물질주의, 쩨쩨한 자만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 문제의 핵심, 진정으로 생사를 가르는 결정과 싸움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곳에서 어떤 초월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p. 113
메스로 해결된 상황이 아니라면, 외과의가 선택할 수 있는 도구는 따뜻한 말 뿐이다.
p. 117
재앙(disaster)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부서지는 별을 의미하는데, 신경외과의의 진단을 들었을 때 환자의 눈빛이 바로 그렇다.
p. 121
나는 리 부인과 그 남편의 태도를 살펴가며 부드럽게 대화를 진행했다. 뇌암 가능성을 들은 두 사람에게 다른 얘기가 들어올까 싶었다. 커다란 그릇에 담긴 비극은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주는 것이 최고다. 한 번에 그릇을 통째로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p. 132
만약 토끼가 사소한 실수를 너무 많이 해서 미세하게 조정할 일이 계속 생긴다면 거북이가 이길 것이다. 만약 거북이가 각 단계를 계획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인다면 토끼가 이길 것이다.
p. 141
긴장감 높은 분야의 의사는 삶과 정체성이 위협받고 삶이 굴절되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 환자를 만나게 된다. 의사의 책무는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주는 것이다.
p. 143
마치 천사와 씨름한 야곱처럼 죽음과 씨름하는 훈련을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의미와 대면하려 했다. 우리 환자의 삶과 정체성은 우리 손에 달려있을지 몰라도, 늘 승리하는 건 죽음이다. ...(중략)... 이에 대처하는 비법은 상황이 불리하여 패배가 확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환자를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p. 154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이렇게 말했다. “어설프게 배우는 건 위험한 일이다. 뮤즈의 샘을 흠뻑 마시든가, 아니면 입도 대지 말라”.
p. 155
우리는 춤을 추며 웃고 있었다. 그 사진을 보고 있자니 너무 슬펐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존재인지도 모르고 함께할 인생을 계획했다.
p. 174
루시와 나는 고통을 피하는 것만이 삶은 아니라고 느꼈다.
p. 175
시험관에서 적어도 몇 개의 배아를 만든 뒤 그 중에서 가장 건강한 배아를 착상시켜야 했다. 나머지 배아는 죽게 된다. 새로운 삶을 위해 아이를 가지는 일에서조차 죽음은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
p. 198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때까지 돕는 것이다.
에마는 나의 옛 정체성을 되돌려주지는 않았다. 대신에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내 능력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정체성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
⸙
p. 201, 202
과학을 형이상학의 결정권자로 보면 세상에서 신 뿐만 아니라 사랑, 증오, 의미도 함께 사라져버리고, 이런 의미가 모두 사라진 세상은 결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인생의 의미를 믿으면 반드시 신도 믿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이 신에 대해 어떤 근거도 제공할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인생의 의미에 대한 근거도 마련해주지 못할 것이다.
과학은 재현 가능성과 인위적인 객관성에 기반을 둔다. 그래서 물질과 에너지에 대해 이런저런 주장을 내세울 때는 탁월하지만 고유하고 주관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실존적이고 본능적인 성질에 과학 지식을 적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과학은 경험적이고 재현 가능한 정보를 체계화하는 데 가장 유용한 방식일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과학의 능력은 역설적으로 인생의 가장 중심적인 측면들(희망, 두려움, 사랑, 증오, 아름다움, 질투, 명예, 나약함, 부단한 노력, 고통, 미덕)을 포착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p. 203
원죄의 기본적인 메시지는 ‘늘 죄책감을 느끼라’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런 맥락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선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지만, 항상 거기에 맞춰 살지는 못한다.’ 결국 이것이 신약성경의 메시지이다.
p. 211
환자를 덮은 천을 벗겨냈을 때 이번에 처음으로 함께 일한 수술실 간호사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이번 주말에 당직이신가요 선생님?”
“아니요.” (아마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오늘 잡혀 있는 수술은 더 없으세요?”
“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어머, 정말 해피엔딩이군요! 일이 정말 끝난 거네요. 전 해피엔딩을 좋아해요. 선생님은요?”
“그럼요. 저도 해피엔딩을 좋아하죠.”
⸙ 죽음을 앞둔 의사와, 그걸 모르는 간호사의 대화. 그 공기의 간극이 내 마음을 묵직하게 눌렀다.
p. 234
(딸에게.)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p. 253
독자들은 잠깐 내 입장이 되어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거야. ‘그런 처지가 되면 이런 기분이구나… 조만간 나도 저런 입장이 되겠지.’ 내 목표는 바로 그 정도라고 생각해. 죽음을 선정적으로 그리려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을 때 인생을 즐기라고 훈계하려는 것도 아니야. 그저 우리가 걸어가는 이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지.
p. 262
폴이 일찍 깨달았고 나 역시 뼛속 깊이 실감하고 있는 사실이 떠오른다. 생과 사는 떼어내려고 해도 뗄 수 없으며, 그럼에도, 혹은 그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폴에게 벌어진 일은 비극적이었지만, 폴은 비극이 아니었다.
폴은 세상을 떠났고 나는 거의 매순간 그가 사무치게 그립지만, 우리가 여전히 함께 만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중략)… 이렇게 내 사랑은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p. 280
칼라니티는 산을 쌓아올리다가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완성하지 못했더라도 그것 역시 자신이 감당할 몫이라면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댓글 남기기
닉네임, 댓글 하나라도 작성 안하면 등록 버튼이 비활성화 됩니다. 원래 경고창이 떠야했는데 제 지식이 부족해서 구현이 안돼요ㅠㅠ 안내문구 남겨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