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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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했던 것들을 뒤로하고

오래전부터 나는 사람과의 교류를 피하며 살아왔다. 기본값이 ‘인간혐오’였고,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남겨둔 아주 약간의 인류애를 제외하곤 사랑의 불모지였다. 사람과 함께하며 느낀 회의감이 많았고, 상처받는 것을 싫어하는 겁쟁이이기도 했다. 내 옆에는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면.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그래서 7년 가까이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았다. 오직 엄마만이 나와 연결된 유일한 사람이었다.

고요함 속에서 나만의 세계를 쌓아갔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운 삶을 꿈꾸었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피하고 싶었다. 외로움과 독립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고,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평온하다고 믿었던 세계가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 예상치 못한 변화

혼자만의 삶을 차분히 준비하고 있던 내게 이상한 사람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불편했다. 엄마가 아닌 사람과 연락을 하고, 엄마가 아닌 사람에게 내 시간을 할애하는 것 자체가 거슬렸다. 내가 왜 이 사람에게 시간을 써야 하지? 나는 내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관계의 시작부터가 조심스러웠고, 선을 넘으면 조용히 끊을 준비도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세상을 지키던 벽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인생이 변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맑았고, 솔직했으며, 숨기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고,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마음을 기울여 보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동안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스위스 안락사를 통해 삶을 마감하려던 내가, 오래 살고 싶어졌다. 이 사람 덕분에.

나의 철저한 계획 속에 없던 감정이 스며들었고, 그로 인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쩌면 나는 보호라는 이름 아래, 내 삶을 지나치게 좁게 만들어왔을지도 모른다. 이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나의 세계는 조금씩 확장되고 있었다.

⚘ 새로운 균형을 찾아서

오직 나만을 위해 시간을 쓰던 삶에서, 타인을 내 삶에 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조정이 필요해졌다. 블로그 글을 완벽하게 쓰려던 습관도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 새로운 기록 규칙
  • 밍을 안 만나는 날: 간단한 기록만 남긴다. 수면 시간, 운동 시간, 식단, 감사일기, 그리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이벤트 한 가지 정도.
  • 밍을 만나는 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세히 기록한다. 하나하나 기억하기 위해.

밍을 일주일에 최소 이틀은 만난다. 따라서 일정도 조금 바뀌었다.

  • 밍을 안 만나는 날: 운동 1시간 40분.
  • 밍을 만나는 날: 내 루틴 운동 대신 어나더 운동.

이제 나의 시간표에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이 포함되었다. 그 과정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은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해야만 했다. 나의 리듬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는 것은 생각보다 신중함이 필요한 일이었다.

⚘ 새로운 삶, 새로운 시선

변화가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이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까지 내 곁에 누군가를 들이는 일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믿어왔다. 타인과 깊이 얽히는 관계는 피곤하고, 불필요한 감정의 소모라고 생각했다. 나 혼자만의 삶을 단단히 지켜나가는 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가장 안정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내 삶에 들어온 이 사람은, 그런 나의 믿음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흔들었다. 익숙했던 것들이 하나둘 바뀌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이 마냥 불편한 일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는 나의 세상이 생각보다 작았다는 걸 실감한다. 단단한 벽이라 여겼던 것들은 조금만 힘을 빼면 쉽게 부서지는 유리조각 같은 것이었고, 스스로를 보호하려 만든 장치들은 때로 나를 갇히게 하는 덫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 이제는, 벽을 허물고 바깥으로 걸어 나가보려 한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누군가를 내 삶에 초대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조심스럽고, 때로는 두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 덕분에 나는 이전보다 더 따뜻한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나를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제는 그 경계가 더 유연해지고 있다. 벽을 쌓기보다 다리를 놓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 변화가 완전히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나는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나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 속에서. 그리고 그 세상은, 예상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따뜻하다.

1 개 댓글

닉네임, 댓글 하나라도 작성 안하면 등록 버튼이 비활성화 됩니다. 원래 경고창이 떠야했는데 제 지식이 부족해서 구현이 안돼요ㅠㅠ 안내문구 남겨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