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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jex 류제 갓생  나를보내지마, 가즈오이시구로, 소설, SF소설
분류내용
제목나를 보내지 마 never let me go
저자가즈오 이시구로
출판민음사
장르SF소설
읽은 기간2025-01-10, 13일 (2일)
별점⭐⭐⭐⭐⭐

※ 목차를 클릭하면 해당 항목으로 이동합니다.

📝 줄거리

잉글랜드의 한 기숙학교 ‘헤일셤’에서 자란 캐시, 루스, 토미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곳은 특별한 목적을 지닌 아이들이 모인 곳이다. 학생들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지내며, 예술 활동이 장려되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성장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누군가의 유전자로부터 복제된 ‘기증자’로서 살아가야 할 운명을 깨닫게 되면서 이야기는 점점 어두워진다.

시간이 흘러, 캐시와 친구들은 기숙학교를 떠나 ‘코티지’라는 곳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들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운명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하게 된다. 루스는 토미와 연인이 되지만, 캐시는 오랫동안 토미를 사랑해 왔다. 삼각관계 속에서 오해와 상처가 쌓여가고, 결국 각자는 정해진 길을 따라가게 된다.

결국 루스는 기증 과정에서 먼저 세상을 떠나고, 토미 역시 기증을 거듭하며 점점 쇠약해진다. 캐시는 ‘간병인’으로서 그들을 보살피지만, 토미와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마지막 순간, 두 사람은 기증을 연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 하지만,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캐시는 홀로 남아 지난 시간을 되새긴다. 바람이 불어오는 들판 한가운데서, 그녀는 떠나간 친구들을 떠올린다. 이제는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존재들임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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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들



헤일셤에서의 날들은 평범해 보였다. 아침이면 함께 운동장을 걸었고, 손을 잡고 그림을 그렸으며, 말없이 서로의 표정을 읽었다. 그곳에서는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었고, 기쁨도 슬픔도 당연한 듯 흘러갔다. 아이들은 서로를 위로하는 법을 배웠고, 때로는 상처 주는 법도 배웠다. 그리고 아주 늦게야 깨닫는다. 그 모든 것이, 헤일셤의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특별한 존재’라고 불러왔던 것조차도, 그들을 인간답게 만들려는 시도였음을.

그들의 삶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었다. 처음에는 희미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짙어진다. 그들이 떠올리는 미래는 우리가 떠올리는 미래와는 달랐다. 우리가 ‘미래’라고 부르는 것, 즉 꿈을 꾸고, 계획을 세우고, 어딘가로 나아가고자 하는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이 태어난 이유는 단 하나, 기증자가 되는 것이었다.

“너희 중 아무도 미국에 갈 수 없고, 너희 중 아무도 영화배우가 될 수 없다. 또 일전에 누군가가 슈퍼마켓에서 일하겠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너희 중 아무도 그럴 수 없어. 너희 삶은 이미 정해져있단다. 성인이 되면, 심지어는 중년이 되기 전에 장기 기증을 시작하게 된다. 그거야 말로 너희 각자가 태어난 이유지.
…(중략)…
너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미래가 정해져있지.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말을 전하는 방식은 조용했고, 담담했으며, 때로는 슬픔이 묻어나왔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아이들은 반항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언젠가 자신들이 도달할 마지막을, 태어났을 때부터 기다려온 결말을.

“우리한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있었나요?”

캐시가 묻던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불안을 가득 머금은 떨림이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질문하는 아이처럼, 확인받고 싶다는 듯이. 나는 책을 덮고도 한참 동안 그 질문을 곱씹었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네가 정말 인간인지 증명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헤일셤에서는 예술이 중요했다.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는 것. 그것이 아이들의 인간성을 가늠하는 척도처럼 여겨졌다. 아이들은 창작을 통해 자신을 표현했고, ‘복제인간 영혼 옹호자들’은 그것이 곧 복제인간들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았다. 토미가 그린 동물 그림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들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른다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하는 마음,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기록하려는 태도. 헤일셤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성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식 아닐까.

기억과 그 기억을 쌓아 올린 서사는 존재의 또 다른 증명 방식이다. 캐시는 기억 속에서 루스를 찾고, 토미를 되살리고, 헤일셤을 떠올린다. 함께 웃던 날들, 손을 잡고 속삭였던 밤, 운동장을 뛰어다니던 순간들. 살아온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누군가가 기억하는 한 그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기억을 공유하는 것,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서로를 떠올리는 것. 그들은 기증자이기 전에 친구였고, 연인이었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이었다.

헤일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후, 한때 그곳에서 살아가던 아이들의 그림과 글은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못한 채 흩어졌다. 하지만,헤일셤에서 자란 아이들은 서로를 이해했고, 아끼고, 위로하며 살아갔다. 관계를 맺고, 감정을 주고받으며,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다. 사랑을 하기도 했고, 질투를 하기도 했으며,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했다. 헤일셤을 지웠다고 해서, 그들이 없었던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들이 서로에게 남긴 유대는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마지막 흔적이었다.

헤일셤은 폐쇄되었다. 진짜 인간들은, 그들을 인간처럼 대하면 안 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복제 인간들에게도 영혼이 있음을 인정하는 순간, 그들을 기증자로만 바라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인간성을 지워야만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이 대목까지 읽었다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영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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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한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있었나요?”

캐시가 이 질문을 나에게 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녀의 슬픔과 혼란을 이해하면서도, 그녀가 지닌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가장 다정한 언어로.

“누군가는 너희가 영혼을 지녔는지 의심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건 너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너무 쉽게 외면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기 때문이었지. 사람들은 때때로 존재의 가치를 진짜로 들여다보기보다는, 그저 역할이나 용도로만 판단하려 하거든.

그렇지만 너의 삶을 돌아봐.
너희는 사랑했고, 우정을 나누었고,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웃었어.
그 자체가 너희가 영혼을 지닌 완전한 존재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야.

사실, 증명 같은 건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어.
너희는 처음부터, 언제나 충분히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였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럴 거야.”

전할 수 없는 나의 대답이, 책장을 덮은 후에도 여전히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곁에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

📜 기억에 남는 글귀 (스포주의)

⚠️ 주의 : 이 아래로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아직 책을 읽지 않으셨다면 아래는 나중에 확인하세요!

p. 121
어느 날 저녁 도버 회복 센터의 타일 벽으로 된 병실에 앉아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루스가 말한 것처럼 당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혹시 귀중한 뭔가를 잃어버렸다 해도, 애써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해도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 어른이 되어 자유롭게 전국을 여행할 수 있게 되면 노퍽에 가서 그것을 찾을 수 있을거라 여기고 위안을 삼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p. 128
그 노래의 어떤 점이 왜 그렇게 특별하게 여겨졌던 것일까? 가사의 의미를 새기는 대신 나는 ‘베이비, 베이비, 네버 렛미고…’ 라는 후렴구가 흘러나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평생에 걸쳐 간절하게 아기를 바랐으나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선고를 받은 어떤 여자를 떠올렸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서 그 여자는 아기를 낳았다. 그 아기를 품에 안고 어르면서 ‘베이비, 네버 렛 미 고…’ 하고 노래하는 것이다.

그 노래의 어떤 점이 왜 그렇게 특별하게 여겨졌던 것일까? 가사의 의미를 새기는 대신 나는 ‘베이비, 베이비, 네버 렛미고…’ 라는 후렴구가 흘러나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평생에 걸쳐 간절하게 아기를 바랐으나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선고를 받은 어떤 여자를 떠올렸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서 그 여자는 아기를 낳았다. 그 아기를 품에 안고 어르면서 ‘베이비, 네버 렛 미 고…’ 하고 노래하는 것이다.

⸙ 근원자(진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복제인간의 상상력과 그 감정.

p. 130
그녀는 복도에 조용히 서서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방 안에서 내가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점은 그녀가 울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음악을 뚫고 들려온 그 흐느낌 소리에 내가 몽상에서 깨어난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거기에 그대로 선 채 그녀는 줄곧 흐느끼면서 우리를 쳐다볼때면 항상 떠올리던 눈빛, 마치 섬뜩한 뭔가를 바라보는 듯한 눈길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눈빛에 뭔가 다른 것이 담겨 잇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나로서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p.146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 내려면, 당연히 필요한 사항을 알고 있어야 해. 너희 중 아무도 미국에 갈 수 없고, 너희 중 아무도 영화배우가 될 수 없다. 또 일전에 누군가가 슈퍼마켓에서 일하겠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너희 중 아무도 그럴 수 없어. 너희 삶은 이미 정해져있단다. 성인이 되면, 심지어는 중년이 되기 전에 장기 기증을 시작하게 된다. 그거야 말로 너희 각자가 태어난 이유지. 너희는 비디오에 나오는 배우들과 같은 인간이 아니야. 나랑도 다른 존재들이다. 너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미래가 정해져있지. 그러니까 더 이상 그런 얘기를 해서는 안된다. 너희는 얼마 안 있어 헤일셤을 떠나야 하고, 머지않아 첫 기증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해.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 내려면, 너희 자신이 누구인지 각자 앞에 어떤 삶이 놓여 있는지 알아야 한다.

⸙ 이 부분을 읽고 머리를 가격당한 듯 멍했었다.

p. 448~
사람들은 너희 존재를 거북하게 여겼지만, 그들의 더 큰 관심은 자기 자녀나 배우자, 부모 또는 친구를 병에서 구하는 거였단다. 그래서 너희는 아주 오랫동안 어둠 속에 머물러 있었지.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되도록 너희 존재를 생각하지 않으려 했단다. 그럴 수 있던 건 너희가 우리와는 별개의 존재라고, 인간 이하의 존재들이라고 스스로에게 납득시켰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너희 학생들에 대해, 너희가 어떤 상황에서 성장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았어. 다른 말로 하자면 얘들아, 너희가 어둠 속에 머물러 있기를 바란 거야.

한때 어떤 흐름이 있었지만 이제는 지나가 버렸어. 세상일이 때때로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대중의 생각이나 감정은 이쪽으로 쏠렸다가 저쪽으로 가 버리지. 그 과정 중 한 지점이 너희의 성장기와 겹쳤던 거란다.
p. 463
나는 빠르게 다가오는 신세계를 보았지. 과거의 질병에 대한 더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그래, 더 많은 치료법을 말이야. 맞아. 거칠고 잔인한 세상이지. 나는 어린 소녀가 두 눈을 꼭 감은 채 과거의 세계,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걸 자기도 잘 알고 잇는 과거의 세계를 가슴에 안고 있는 걸 보았어. 그걸 가슴에 안고 그 애는 결코 자기를 보내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지. 나는 그 장면을 바로 그렇게 본 거란다.

⸙ 베개를 끌어안고 춤을 추는 캐시를 본 마담이 눈물을 흘렸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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